아버지 저 자현이에요. 오랜만에 안부 여쭤봅니다.
하늘에서도 잘 지내시죠? 무릉도원같은 곳에서 낚시하시던 꿈이 엊그제같은데 꿈에도 안 나타나시는 걸 뵈니 잘 지내시는 듯 합니다.
추석에 어머님과 함께 동생을 데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갔다왔어요.
집안 행사가 있어서, 베트남에 가지 않는 새, 이런 저런 곳에 얼굴 비추며 다녀오고 있답니다.
작년에는 여자친구랑 같이 벌초를 하고 왔었는데, 이번에는 기회가 또 되어 벌초를 다녀오니 마음은 항상 일년의 마무리를 하듯, 개운한 것 같습니다.
매년 쳐보는 것도 처음인지라, 얼마나 자랐나싶어 가보니, 오랜만에 간 것보다는 정돈 되어 참 마음이 기쁘더군요. 고사리도 덜 자라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맷돼지가 파놓은 구덩이도
깊지 않고, 빠르게 인사드리고 왔습니다.
다만, 음지가 많아 떼가 많이 죽고 없어져 내년 식목일에는 꼭 떼를 사갖고 가서 매우고 싶네요.
고모랑 작은 아버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작은 아버지도 며칠 전 누군가의 결혼식 날 뵙게 돼서 안부만 조금 여쭤보았습니다.
작년에 벌초를 해서 그런가, 할머니 할아버지, 또 조상님들이 잘 돌봐주시는 지 모르겠지만 작은 아버지 건강이 많이 회복돼보이시더라고요. 다행인 마음 가지고
이번 벌초에서는 어머니의 무탈함과 도와주심을 부탁드리고 왔어요.
저는 베트남에 다시 가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아버지.
이 결정이 잘못됐을 지 모르겠지만, 우선 가지 않고 다른 일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매번 힘들 때만 편지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저번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많이 힘듭니다.
그저 돌아올 때 마음가짐은, 달렸던 그 때처럼 계속해서 걸어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정체돼 힘이 더 든 것 같아요.
다시 시작하는 것도, 또 대책을 세우는 것도 미흡한 걸 보면 청춘이여서 라고 핑계대고 싶지만,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에 더더욱 빠르게 가는 시간을 보면
한숨만 나오기만 합니다.
친구들은 결혼하고 돈을 벌고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는데 아직도 찾지 못한 내 소중한 무엇인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아버지가 조언해주셨던 대로 아무 생각없이 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허락치 않네요. 지금은 생각해야할 때인가 싶기도 하고...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이 뒤섞이고
희망을 갖고, 실망도 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하다보면 지쳐버립니다.
누군가처럼 사는 것이 행복일까요? 제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처럼 해야하는 것도 제가 아닌 것 같고 제가 누구인지 조차 잊어버리곤 합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태생이 외롭고 슬픈 사람이라서 그런지 '탓'을 하게 되네요.
슬럼프이겠죠? 깨달아도 깨달아도 다시 원점인 걸 보면 미숙한 사람. 제가 주인공이 아닌 것도 같네요.
하지만, 얼마전에 본 영상에서 조금씩 영향을 받습니다. 큰 선물은 큰 시련으로 쌓여있다고요.
도와주세요 아버지. 불쌍한 어머니, 철없는 동생. 그리고 외롭기만한 외길 인생. 다시 쓸게요 아버지. 항상 가슴 속에서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